오늘 말씀은 에베소서 4:28-32절 말씀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2

 

계속해서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고 따르기로 결정 하였을 때,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전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윤리이기도 하지만, 성도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빛이 가리지 않고 맛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이 죽음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핑게 댈 수 없는 나의 죄의 문제들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영원한 것과 썩지 않을 것을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사랑과 생명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얻은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 한 것이며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우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에 기쁨으로 우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목사와 선교사가 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직업과 달란트와 은사로 목사적인 또한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을 얻은 성도의 삶의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여기서 도적은 직업적인 '도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착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의 판단으로 정죄 할 수 없는 사소한 도적질까지 포함합니다(Calvin).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얼굴이 후끈거리는 기억입니다. 친구집에서 저금통에 있던 만원짜리 지폐를 몰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저기 저금통에 있던 만원짜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나는 당연히 '모르는데요'라고 말했다. , 내가 한 일이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어머니는 내가 분명 그 돈을 가져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주머니를 열어보기만 했으면, 당장에 도둑놈으로 정의를 실현 할 수 있으셨을 텐데,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도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네 집 뿐 아니라, 다른 친구네서도 백원 이백원을 심지어는 장난감도 들고 나른 적이 있습니다내가 예수님을 믿고나서 그 기억들이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백원 이백원을 훔친 친구네로 가서 부끄러워서 차마 얼굴을 마주보고 돌려주지를 못해서 문틈 사이에 200원을 끼어 놓고 벨을 누르고 도망친 적이 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그 친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는 내가 돈을 훔치고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어라?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일을 하라고 기록하였습니다구제는 단순히 가난하고 굼주린 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구제의 전부로 착각하게 되면 교회는 난민 수용센터가 되야 합니다그러나, 궁극적인 구제는 음식과 옷을 주는 것이 다가아니라, 그들의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궁극적인 구제를 하는 개인과 공동체로 세상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일을하고 수고하는 이유는 재물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없어질 재물로 영원한 생명을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더러운 말도 우리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야고보서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로, 음담패설과 다른이를 욕하고 저주하는 말을 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오늘 나의 부끄러운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나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욕을 정말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중 남고를 나와서 그런지, 욕을 섞어서 말을 하지 않으면 지고 들어가는 분위기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필리핀에 선교사로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같은 크리스쳔이라고 하는데 삶이 너무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달랐던 것은 그 친구는 욕설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나도 예수님을 믿는데 나는 왜 저러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주위에 친구들에게 내가 욕하면 할때마다 천원씩 준다고 말하고 욕을 끊기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이러한 악한 행동들리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행동들인 것은 자명합니다그래서 도적질 하지 않는 것과 욕을 제하여 버리는 것을 결정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로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하나님의 성령을 분명히 근심하게 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절에서 바울이 기록한 말씀 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즉 서로를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내 입술에서 욕설을 내 손에서 도벽을 없에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었습니다아니 내 스스로는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하나님께서는 분명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는 용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용서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리 오래 나를 기다리셨는지 용서하라고 막 강요하시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족을 얻을 때 분명 가능 한 일입니다

 

우리가 용서 할 때, 더욱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인자하게 여기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할 때 세상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