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무엘상 4:12-22절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건을 기록함에 있어서 솔직하게 기록하기 때문에 참으로 비참하고 참혹한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 창세기 3장이 인류의 타락이 처음으로 기록된 chapter라서 매우 슬픈 chapter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3장에서는 여인의 후손이 올 것이라는 즉 메시아가 올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약속이 주어집니다

창세기 4장도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가인의 후손들의 죄악된 삶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4장 마지막 부분에서 아담과 하와가 아벨 대신 셋을 낳고 그의 후손 에노스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에 그래도 소망이 있는 chapter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4장 전체는 빛과 어두움 중이라면 어두움에 속하며 기쁨과 슬픔이라면 슬픔에 속하고, 영광과 저주라면 저주에 속하는 참으로 비통하고 어두운 chapter에 해당됩니다.

4장에 보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전투에서 도합 34천명이 죽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전투에서 블레세에게 빼앗겼으며, 언약궤 옆에 있던 홉니와 비스하스 두 제사장은 죽고 맙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설상가상 비느하스의 부인이 해산 중 아들을 낳다가 이런 어두운 소식을 듣고는 죽고 맙니다. 죽기전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름을 풀이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안좋은 이름입니다

이미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엘리의 가문이 완전히 몰락하였고 온 이스라엘은 전쟁의 패배로 인해 두려움에 빠져있는 chapter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였던 선택받은 축복된 민족이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다른 민족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제사장의 나라로 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19:6).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역활을 담당하는 자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되 그들을 통하여 다른 나라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4장은 제사장들이 먼저 타락했습니다. 제사장들이 타락하니 온 나라가 같이 타락했고, 결국 이스라엘 온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제사장의 역활을 감당치 못하게 된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하고 말씀을 버려 죄악에 빠져 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 죽는 엄마가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면서 아들 이름을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이름을 짓고 죽은 것 입니다

이스라엘의 앞날을 예견한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아들, '이가봇'이 엄마없이,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살아갈 시대는 얼마나 어두울 까요

오늘날 그 뜻을 알고도 누가 자녀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겠습니까만 실상 자녀의 이름이 이가봇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21세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른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죄악된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이가봇의 시대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며 매우 불경건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 교회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이가봇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 이 시대의 자녀들이 이가봇처럼 살아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가봇의 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이가봇의 반대되는 단어가 ‘쉐키나’입니다. 쉐키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쉐키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쉐키나 영광은 모세가 광야 시절에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나타났습니다. 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봉헌하였을 때 쉐키나가 구름 속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쉐키나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자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으로 영광 중에 들려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쉐키나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더 알려면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했던 요한복음 17장을 보시면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무려 8번이나 '영광' 혹은 '영화'(Glory)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영광이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즉 십자가를 앞두고 인류를 위해 대속의 죽임을 당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24절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비록 죄악된 세상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큼은 이 시대에 이가봇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분의 영광이 함께 있게 있는 세키나의 인생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요한복음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날마다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늘 살려면 사무엘상 4장에 있었던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지 항상 민감해야 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두 제사장은 심각한 죄를 지으면서 죄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습니다. 죄 가운데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본장에 나오는 것처럼 미신적으로 신앙생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계적으로 보장되는 실용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미신적으로 행했다가 빼앗기게 됩니다

그것은 미신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신문을 보실 때 오늘의 운세를 보지 않으십니까점을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미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벼랑끝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먹고 죄와 함께 살아가는 이 현대 사회에서 이가봇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최고로 여기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날마다 임재 가운데 사는 세키나의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