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11:8-10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그 장소

사람들은 살면서 땅에 대한 소유 욕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땅투기'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땅부자'란 말도 있듯이 사람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가 봅니다.  

오늘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에 바로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8절에 한번, 9절에 두번 '땅'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땅과 아브라함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은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하지만 사도행전 7장에서 밝힌 스데반 집사의 설교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보다 더 일찍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을 보게 됩니다

원래 맨 처음에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그 땅을 떠나 하나님이 보이실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다고 스데반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창세기 12장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이란 곳에서 하나님이 두번째로 나타나신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이 그것을 뒷바침해 주고 있습니다

여하튼 '우르''하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이실 땅으로 떠나 가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대로 갈대아 우르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갈대아 우르는 떠났을지 몰라도 여전히 메소포타미아 끝자락에 속한 하란에 장막을 치곤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제 모든 주도권을 가지게 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보이실 땅으로 가라고 다시 명령하신 것입니다.거기서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보이실 땅으로 떠납니다

그때의 상황을 히브리서 저자가 간략하게 11:8절에 말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요즈음은 어디를 간다고 하면 인터넷을 통해 그 지역을 샅샅이 미리 살펴보아 갑니다. 그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마치 가본 것 처럼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가면 숙박시설, 볼 곳, 놀 곳이 있는지 사전에 다 조사를 끝내 놓고 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 땅 이름도 미리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일단 떠나면 그 길을 책임지고 앞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히브리서 저자가 한 말에 있습니다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좇아가면서도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주의 명하심을 좇아서 어디론가 가고는 있지만 그곳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상태였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인도하심 속에 길을 걸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구름을 따라 갔던 것을 기억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이든지 앞서서 아브라함의 가족을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따라가다보니 가나안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서자 하나님은 비로서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실 땅이 바로 가나안임을 밝히셨습니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먼저 자신이 갈 길을 다 정해놓은 후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렇게 미리 다 정해 놓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내가 나의 갈 길을 정했으니 하나님은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을 '인정'해 주시고 '허락'만 해 주시면 된다는 의미의 기도입니다

아브라함때 처럼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시면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똑똑해서 내가 다 알아서 정해놓고 하나님은 단지 내가 가는 그 길을 인정해 주고 허락만 해주는 식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으신가요?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마치 아브라함처럼 말이지요

어디선가 보았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 시키는 곳에 가야 하는 것이 종이지, 내 마음에 드는 일, 내 마음에 드는 장소를 가는 것이 종의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야 할 땅도 하나님이 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처럼 말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이 그가 받을 유업 전부였을까요? 만약에 그렇게만 따진다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전체를 온전히 받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이 아실 겁니다

사라가 죽었을때 가나안 헷족속에게 막벨라 밭 굴을 돈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인이 묻힌 땅에 같이 묻히는 것이 가나안에서 얻은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아브라함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받을 유산은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이었지만(12:7; 15:7), 이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성이었습니다(10).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단지 가나안 땅만을 주시려고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그 가나안 땅과 더불어 하나님 자신이 지으시고 직접 경영하시는 성을 유산으로 주시려고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땅'이란 단어를 사용한 헬라어 '토폰' 은 원래 '땅'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더 포괄적인 단어로 히브리서 저자가 8절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토폰'이란 '땅'의 개념은 이 세상의 땅의 개념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땅'이란 의미를 넘어서서 '장소'라는 개념이 더 강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늘의 도성이었던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지 역시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하늘나라 도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11:10절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세상에서 가나안 땅을 통해 아브라함이 배운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확실한 성, 곧 천국을 기다리면서 순례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살다가 주님이 주시는 이 거룩한 성에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주의 약속 하나만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은 이 성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배울 교훈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에 그 인도하시는 장소로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곳이 내가 원치 않는 곳이라도 선하신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나아가야 하는 믿음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시는 땅이 혹 없더라도 나에게 인도하시는 그 장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그 장소에서 오늘 내가 서 있으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장소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던 새로운 도성입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위해 영원한 도성을 예비해 놓으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역시 준비해 주셨으니 그 장소로 가기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는 이 세상의 장소도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는 저 영원한 도성의 장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린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장소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